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영남 대작 사건 (문단 편집) === 예술계 반응: 수작업이 중요한가? 구상작업이 중요한가? === 예술계 반응은 엇갈렸다. [[진중권]]은 사건 다음날인 5월 17일 트위터에 예술계에 조수 등이 작업을 돕는 관행이 존재함을 언급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5&aid=0000899029&gid=999339&cid=1016801|진중권 “조영남 대작? 미술계 관행… 10만원은 짜다”]] 진 교수는 18일에는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미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https://www.nocutnews.co.kr/news/4594702|진중권 "조영남에게 죄있다면 노동착취뿐"]]이라며 '대작은 개념미술의 공공연한 관행', '예술은 작가의 피땀? 낭만주의 관념'이라며 현대 예술의 핵심을 집었다. 반면 이동연은 '“현대미술의 관행” 운운하는 해명은 대중들에게는 잘난 체하는 ‘엘리트주의’로 힐난의 대상이 된다.'고 비난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312044005&code=990100|#]]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도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주장은 사기 행위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지어낸 말”이라며 “대작이 관행이라면 그같은 작품이나 화가의 명단을 구체적 증거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신제남은 11개 미술단체[* 사)한국미술협회,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사)서울미술협회, 사)한국수채화협회, 사)현대한국화협회, 사)목우회, 사)구상전, 대한민국회화제, 대한민국구상화원로작가협의회, 미술단체 신기회, 미술단체 창작미술협회]의 성명을 모아 고소장을 제출했다.[[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06/13/20160613002255.html?OutUrl=naver|고소장 전문]] 나아가 신제남 이사장은 진중권이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고소장에 관련 내용을 적고 법적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이 고전미술 쪽에서는 이동연의 입장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긴 했으나 상대적으로 현대예술 측은 진중권과 마찬가지로 '왜 이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사건 초기 이런 대작 관행이 있다고 옹호한 것은 거의 진중권 혼자였고 진중권 혼자 비판적인 예술계와 언론계를 상대로 1대 100의 싸움을 벌였다. 다른 예술계 전문가들은 익명으로 진중권 입장을 지지하는 데 그쳤는데 이는 이동연이나 신제남의 의견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이미 수작업보다 구상작업이 중요하다고 답이 나온 마당에 이런 소모적인 논쟁에 힘을 낭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미켈란젤로나 루벤스 같은 르네상스, 바로크 시기 작가들도 조수들과 함께 작업했다. 그리고 이는 도제관계라고 불렸다. 유화를 한 점 그리는 데 물감이 마르고 다시 덧칠하는 과정이 필수였으므로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최소 몇 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튜브물감이 나오기 전에는 예술가들이 스스로 물감을 만들어 써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도제 시스템이 적용됐는데 가내 수공업 내지는 공장제 수공업처럼 어떤 제자는 물감만 빻고, 어떤 제자는 물감만 개고, 어떤 제자는 배경 색깔만 칠하는 식으로 분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이 과정 자체는 하나의 수련 과정으로 여겨졌다. 스승인 화가가 하는 것은 작품의 뼈대가 되는 스케치를 잡아주고 세세한 지시를 내리고 마무리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매만지는 것이었다. 대신 스승인 화가는 작품값을 판 돈으로 제자들을 어느 정도 먹여 살려줘야 했는데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협업자나 제자 등을 두지 않고 혼자 그리는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보통 혼자 생활하기 원하거나, 가난하거나 유명하지 않아 제자를 둘 형편이 안 되는 경우였다. 혼자 생활하기를 원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조수를 안 두는게 아니라 못 두는 것이었다. [[렘브란트]]는 말년에 생활고와 심리적 고통에 빠져 혼자 생활한 경우고 [[고흐]]는 집에서 아버지가 돈을 부쳐주지 않아서 가난했고 무명 작가였기에 혼자 그린 것이다. 그러므로 웬만큼 능력 있는 예술가라면 다 제자를 두고 그렸다고 볼 수 있다. 동양화에서는 작가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어디까지나 남종화 문인 계열에 한정되며[* 수묵화의 경우 덧그리기 어려워서 그렇지 유화와 비교하면 손이 덜 간다. 물론 규모가 큰 산수화나 꼼꼼한 초상화를 그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규모가 큰 [[동궐도]] 같은 그림은 당연히 화원들이 협동해 그렸다. [[홍세섭]] 같은 화가는 그림이 인기가 많아서 아버지와 같이 그렸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가, 예술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여전히 예술가가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눈과 손만을 가지고 수작업하는 모습이다. 앞서 진중권이 지적했다시피 과거에도 좀 규모가 큰 작업은 여러명이 작업했다. 오직 눈과 손으로만 수작업하는 방식은 사진이 등장한 근대 이후에는 사실상 유지하기 불가능해졌다. 어차피 똑같이 복제하는 기술은 사진이라는 매우 뛰어난 기술로 대체됐기 때문에 수작업으로 얼마나 꼼꼼하게 그렸냐보다는 무슨 발상과 기획을 생각하고 작품을 구상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됐다. 기계적인 제작 과정보다는 개념이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이미 1963년에 로버트 모리스는 '섬미적 철회 선언(Statement of Aesthetic Withdrawal)'을 통해 개념과 예술가의 선언이 예술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바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예술가들은 카메라 옵스큐라[* 암실형 바늘구멍 사진기와 같은 원리의 구조물]나 카메라 루시다[* 잠망경처럼 거울에 비친 상을 통해 그림을 그리도록 한 도구] 같은 광학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http://entertain.naver.com/read?oid=038&aid=0000151135|#]] 아예 사진을 찍고 인화된 사진 위에 다시 작업하는 예술가도 있다.[[https://www.instagram.com/gilles_pierreetgilles|#]][* 피에르는 특히 초상화에 주력하는 예술가다. 여러 인물들과 작업하는데 해외 유명인사는 물론이고 [[CL]]과 빅뱅 [[TOP]]의 초상화를 작업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피에르의 정체성과 아이디어를 대표하며 엄연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현대예술의 작가가 조수의 도움 없이 홀로 작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설치미술은 일반적인 경향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현대예술가 [[데미안 허스트]]는 100명 이상의 작가를 두고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일본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아예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라는 [[유한회사]]를 차려 스태프들과 같이 일하고 있다. 이렇게 조수를 동원해 상업적으로 제작하는 예술은 외면받고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데미안 허스트나 무라카미 다카시는 바로 그 팝아트 계열로 2010년대에도 잘 나갔다. 이런 논리대로면 [[러버덕 프로젝트]] 같은 예술은 '일반적'이지도 않고 '외면'받는 예술이라는 말이 된다. 현대미술에서 수작업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쪽은 극사실주의 같은 일부 한정이다. 현대예술에서는 손으로 직접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다른 작가에게 제작 하청을 줘도 대작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도제관계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굳이 부른다면 현대예술의 제작 프로세스는 '협업'이나 '의뢰'라고 불러야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이 협업이나 의뢰는 진중권의 말처럼 이미 '예술계 관행'이다.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실력, 기여도, 규모 등은 작품의 작가권(authorship)과는 상관이 없다. 애초에 도제관계가 아니라 협업, 의뢰 관계로 보면 의뢰를 받은 사람이 의뢰자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도 상관없다. 현대미술에서 기여도를 따진다면 단순히 수작업을 누가 많이 했나로 기여도를 따지는 게 아니라 누가 아이디어를 냈고 그 아이디어에 대한 지분이 누가 더 많은가가 중요하다. 이는 작품 규모가 손바닥만한 그림이든 커다란 설치미술이든 마찬가지다. 문제가 되는게 있다면 조영남이 직접 그린 게 아니라 남에게 시켰다는 걸 밝히지 않고 팔았다는 것 뿐이다. 다만 협업, 의뢰 관계에서 보면 그만한 대가를 치뤘느냐가 중요해진다. 작가의 작업물에 대한 대가가 터무니없어서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조영남이 대작 작가에게 돈을 너무 적게 지불했다는 점에서는 거의 이견이 없었다.[* 참고로 조영남의 이름으로 팔린 그림들은 평균적으로 한 점에 약 800만원 정도의 가격이 매겨졌다. 조영남이 "나는 돈 받고 판 적이 없다."고 거짓말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결국 조영남은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이 사건이 그의 잘못이라고 비난하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망신을 사게 되었다. 이에 진중권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480636|“조영남 재판은 전문가 민낯 드러낸 사건”]]이라고 하였다. 여담으로 진중권은 오만가지 사건마다 나서서 모두까기를 보여주는데 그를 비판하는 네티즌들은 이 사건에서도 "너가 뭘 안다고 이번 사건에도 아는 척 하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그가 개입한 99%의 사건은 그의 전문분야와 관계 없었지만 이 사건만은 '미학'을 전공하고 관련 책까지 낸 진중권이 전문가라고 할 만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